퇴직연금 DB형에서 DC형 전환 시 손익과 판단 기준



회사에서 퇴직연금 제도를 바꾸겠다는 안내문이 오고 동의서 한 장이 함께 옵니다. 지금까지는 회사가 알아서 굴려 주던 돈이었는데, 앞으로는 본인 계좌에 들어와 직접 운용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서명 한 번으로 퇴직급여를 정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한번 바꾸면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안내문에는 무엇이 유리해지고 무엇이 불리해지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동의 여부를 정하는 자리에서 실제로 필요한 것은 제도의 이름이 아니라 앞으로 내 임금이 오르는지 꺾이는지입니다. 두 제도의 계산식이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1. 급여를 정하는 두 가지 셈법

두 제도는 같은 퇴직급여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계산합니다.

확정급여형은 퇴직할 때의 임금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회사가 적립금을 운용하고, 운용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근로자가 받을 금액은 다음 식으로 정해집니다.

퇴직급여 = 1일 평균임금 × 30일 × (계속근로기간 ÷ 365)

1일 평균임금 = 퇴직 전 3개월 임금 총액 ÷ 그 3개월의 총일수

확정기여형은 해마다 돈을 넣는 방식입니다. 회사는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근로자 계좌에 넣고, 그 뒤로는 근로자가 상품을 골라 운용합니다.

연간 부담금 = 연간 임금총액 ÷ 12

퇴직급여 = 부담금 합계 + 운용손익

차이는 마지막 임금이 지나간 기간까지 거슬러 올라가느냐에 있습니다. 확정급여형에서는 퇴직 직전의 임금 하나가 20년, 30년 근속 전체에 곱해집니다. 확정기여형에서는 그해의 임금이 그해에 계좌로 들어가 그 자리에서 확정됩니다.

두 제도가 같은 점과 다른 점은 이렇게 갈립니다.

  • 같은 점: 적립금을 회사 밖 금융기관에 맡기는 구조
  • 확정급여형: 약속한 금액에 모자라면 회사가 채워 넣는 책임
  • 확정기여형: 채워 넣을 주체가 없고 계좌 잔액이 곧 받을 금액

2. 임금상승률과 운용수익률이 만나는 지점

확정급여형에서 임금이 오르면 앞으로 일할 기간뿐 아니라 이미 지나간 근속연수 몫까지 함께 올라갑니다. 근속 20년인 사람의 임금이 오르면 그 상승분에 20년이 곱해지는 셈입니다. 그래서 확정급여형에서는 임금상승률이 적립금 전체에 붙는 수익률처럼 작동합니다.

확정기여형에는 그런 소급이 없습니다. 올해 넣은 부담금은 올해 임금으로 정해지고, 그 뒤로는 운용수익률만 붙습니다. 두 제도의 비교가 임금상승률과 운용수익률의 비교로 좁혀지는 이유입니다.

  • 임금상승률이 운용수익률보다 높은 구간: 확정급여형이 유리
  • 두 값이 비슷한 구간: 차이가 작음
  • 운용수익률이 임금상승률보다 높은 구간: 확정기여형이 유리

다만 운용수익률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값입니다. 원리금보장 상품 위주로 두면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 낮아지고, 실적배당 상품을 담으면 손실 가능성이 함께 따라옵니다. 임금상승률은 회사의 임금체계에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지만 운용수익률은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이 오르는 모양도 함께 봐야 합니다. 해마다 조금씩 오르는 구조라면 두 제도의 차이가 천천히 벌어지지만, 승진으로 한 번에 크게 뛰는 구조라면 그 시점을 지난 뒤에 확정급여형 쪽이 급하게 유리해집니다. 승진이 남아 있는지 아닌지가 같은 나이의 두 사람에게 다른 답을 만듭니다.

남은 근속기간이 짧을수록 두 제도의 차이도 작아집니다. 소급될 기간과 굴릴 기간이 모두 짧기 때문입니다.

3. 임금이 꺾이는 구간

전환 논의가 가장 많이 나오는 자리는 임금피크제입니다. 정년을 앞둔 일정 시점부터 임금이 줄어드는 제도인데, 확정급여형에는 이 구간이 특히 불리하게 작동합니다.

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이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줄어든 상태로 퇴직하면 그 낮아진 임금에 전체 근속연수가 곱해집니다. 아래 숫자는 이해를 돕기 위한 가정값입니다.

근속 25년 시점 퇴직급여 = 20만원 × 30일 × 25년 = 1억 5,000만원

근속 30년 시점 퇴직급여 = 12만원 × 30일 × 30년 = 1억 800만원

5년을 더 일했는데 퇴직급여는 4,200만원 줄었습니다. 임금이 꺾이는 폭이 근속연수가 늘어나는 효과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확정기여형으로 옮겨 두면 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환 시점까지의 급여가 그 시점 임금으로 계산되어 계좌에 확정되고, 이후 5년은 줄어든 임금 기준으로 매년 부담금이 더해질 뿐입니다. 이미 확정된 금액이 나중 임금 때문에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법도 이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사용자는 임금피크제처럼 퇴직급여가 줄어들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때 근로자에게 그 사실을 미리 알리고, 근로자대표와 협의해 제도 전환 같은 조치를 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4. 전환할 때 실제로 옮겨지는 금액

전환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가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을 모두 도입하고 있어야 하고, 퇴직연금규약에 전환 절차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한 가지 제도만 두고 있는 회사에서는 규약을 먼저 바꿔야 합니다.

절차도 두 층으로 나뉩니다. 제도를 새로 두거나 규약을 바꾸는 일은 회사가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얻어 처리하고, 개별 근로자가 어느 제도를 적용받을지는 본인의 선택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가 확정기여형을 도입했다고 해서 모든 근로자가 자동으로 옮겨지지는 않습니다.

옮기는 방식도 하나가 아닙니다. 지나간 근무기간까지 모두 확정기여형으로 넘기는 방식이 있고, 지나간 기간은 확정급여형에 그대로 두고 앞으로의 기간만 확정기여형으로 받는 방식이 있습니다. 어느 쪽을 쓸 수 있는지는 규약이 정합니다.

지나간 기간을 넘기는 경우 계좌로 들어오는 금액은 전환하는 시점의 임금으로 계산합니다.

이전 금액 = 전환 시점 1일 평균임금 × 30일 × (전환 시점까지의 계속근로기간 ÷ 365)

여기서 시점이 중요해집니다. 평균임금은 직전 3개월로 계산하므로, 상여가 빠지는 달이나 휴직 직후처럼 임금이 일시적으로 낮은 시기에 전환하면 그 낮은 금액이 그대로 굳습니다. 반대로 임금이 정점에 있는 시기에 넘기면 그 금액이 계좌에 남습니다. 전환 여부와 별개로 언제 넘기느냐가 금액을 가릅니다.

5. 되돌릴 수 없는 방향

확정기여형에서 확정급여형으로 돌아가는 길은 사실상 막혀 있습니다. 근로자가 직접 운용한 결과를 회사가 떠안는 형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규약에 따라 앞으로의 기간만 다시 확정급여형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더라도, 이미 계좌에 들어와 운용된 적립금은 그대로 남습니다.

확정급여형에 있을 때

  • 적립금 운용: 사용자
  • 운용 손실의 부담: 사용자
  • 중도인출: 불가
  • 근로자 추가 납입: 불가
  • 급여를 정하는 기준: 퇴직 직전 평균임금

확정기여형으로 옮긴 뒤

  • 적립금 운용: 근로자
  • 운용 손실의 부담: 근로자
  • 중도인출: 법으로 정한 사유에 한해 가능
  • 근로자 추가 납입: 가능
  • 급여를 정하는 기준: 해마다 쌓은 부담금과 운용 결과

중도인출은 사유가 정해져 있습니다.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 무주택자의 전세보증금 마련, 6개월 이상 요양에 따른 의료비 부담, 파산선고나 개인회생 개시 결정, 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 등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사유마다 증빙과 한도가 따로 붙습니다.

추가 납입은 확정기여형으로 옮긴 뒤에 생기는 선택지입니다. 회사 부담금과 별도로 본인 돈을 더 넣을 수 있고, 개인형 퇴직연금 계좌 납입액과 합해 연금계좌 세액공제 한도 안에서 공제를 받습니다. 다만 그만큼 돈이 묶이고, 정해진 사유가 아니면 중간에 꺼내기 어렵습니다.

6. 서명 전에 확인할 자리

동의서에 서명하기 전에 확인할 것들이 있습니다.

  1. 회사가 두 제도를 모두 두고 있고 규약이 전환을 허용하는지 확인합니다.
  2. 임금피크제나 직급 정년처럼 임금이 꺾이는 시점이 예정돼 있는지 봅니다.
  3. 남은 근속기간 동안 임금이 어떻게 움직일지 가늠합니다.
  4. 전환하려는 시점의 평균임금이 평소보다 낮아지는 사정이 없는지 확인합니다.
  5. 옮긴 뒤 운용할 상품과 감당할 수 있는 손실 범위를 미리 정합니다.

이 다섯 가지는 서로 얽혀 있습니다. 임금이 계속 오르는 구간이라면 확정급여형에 남는 편이 유리하지만, 그 구간이 임금피크제 앞에서 끝난다면 언제 넘기느냐가 금액을 좌우합니다. 남은 근속기간이 길수록 운용 결과가 벌릴 수 있는 폭도 커집니다.

전환의 본질은 회사가 지고 있던 운용 위험을 근로자가 넘겨받는 것입니다. 임금 곡선이 꺾여 확정급여형의 셈법이 불리해지는 구간에서는 그 위험을 넘겨받는 편이 나을 수 있고, 임금이 꾸준히 오르는 구간에서는 그대로 두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한 번 넘긴 위험은 돌려주기 어렵습니다. 이 결정을 다른 금융 선택과 다르게 만드는 것은 유불리의 크기가 아니라 되돌릴 수 없다는 성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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