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기도는 나를 비우고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가는 결단의 시간
사람의 육체는 음식과 물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음식은 일정 기간 먹지 않아도 우리 몸에 저장된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물이 부족해지면 탈수와 전해질 이상이 빠르게 발생하여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음식과 물을 먹지 않고 얼마나 오래 생존할 수 있을까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19세였던 박승현 양은 건물 잔해 속에 약 17일 동안 매몰되어 있다가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당시 본인은 음식과 물을 먹지 못했다고 진술했으며, 구조 당시 의식이 비교적 또렷하고 상태도 예상보다 양호하여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
다만 당시 의료진은 실제로 수분을 전혀 섭취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에는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보았으며, 빗물이나 소방용수 등 어떤 형태로든 수분을 섭취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또한 기네스 세계기록에는 오스트리아의 안드레아스 미하베츠(Andreas Mihavecz)가 1979년 음식과 물을 공급받지 못한 채 18일 동안 생존한 사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사례 역시 실제로는 감방 벽의 결로 등을 통해 극소량의 수분을 섭취했을 가능성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인간의 생존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일반적인 생존 한계를 뛰어넘는 금식에 대한 간증도 전해집니다.
중국 가정교회 지도자로 알려진 윈 형제의 자서전 “하늘에 속한 사람“에는 그가 투옥 중 74일 동안 금식했다는 간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과 관련 자료에서는 그 금식이 음식뿐 아니라 물까지 끊은 금식이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신앙인에게 큰 충격과 도전을 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한 간증을 모든 성도가 따라야 할 금식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간증을 통해 “얼마나 오래 금식했는가”보다 *왜 금식하는가* 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금식기도란 무엇인가?
금식기도란 일정한 기간 음식 또는 음식의 일부를 절제하면서 하나님께 더욱 집중하여 기도하고, 자신의 마음을 살피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영적 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식의 목적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억지로 받아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금식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금식은 하나님을 움직이는 인간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금식기도는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어 주십시오.” 라는 기도라기보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시고, 그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저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라는 기도이어야 합니다.
금식은 음식의 양을 줄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심과 교만,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하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은 금식기도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성경에는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금식은 기간과 방법, 목적이 모두 달랐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등장하는 금식 기간을 하나의 공식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1. 예수님의 40일 금식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마태복음 4:2) 성경은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2. 모세의 40일 금식
모세는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을 주실 때 시내산에서 40일 40야를 머물렀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출애굽기 34:28)
이 말씀은 음식과 물을 모두 먹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 가운데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만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이해해서는 안될것 입니다.
3. 다니엘의 21일 금식
다니엘은 21일 동안 자신을 절제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다니엘 10:3)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니엘이 21일 동안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니엘은 좋은 음식과 고기와 포도주를 먹지 않고 자신을 절제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흔히 말하는 완전 금식과는 구별되는 부분 금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4. 다윗의 금식
다윗은 자신에게서 태어난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금식했습니다.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사무엘하 12:16) 다윗의 금식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5. 야베스 사람들의 7일 금식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7일 동안 금식했습니다. “그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하였더라.”(사무엘상 31:13) 이 금식은 슬픔과 애통 가운데 드려진 금식이었습니다.
6. 에스더와 유다 백성의 3일 금식
에스더는 민족의 위기 앞에서 유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위하여 금식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에스더 4:16)
에스더와 유다인들은 민족의 생존이 걸린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에스더의 고백은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결단을 보여줍니다.
7. 이스라엘 백성의 미스바 금식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할 때에도 금식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사무엘상 7:6) 이처럼 성경에서 금식은 회개와 애통, 간구, 민족적 위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 등 여러 상황에서 나타납니다.
금식의 핵심은 음식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식하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마태복음 6:17-18)
금식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경건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며칠 금식했다.” “나는 40일 금식도 해봤다.”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얼마 동안 기도했다.” 이러한 자랑이 금식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금식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경건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금식의 기간이 길다고 해서 반드시 믿음이 더 좋은 것도 아니며, 짧게 금식했다고 해서 믿음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금식의 날짜보다 금식하는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금식은 하나님께 응답을 강요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금식기도를 “응답을 받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라고만 생각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금식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간절함을 표현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우리의 뜻을 관철시키는 방법은 아닙니다. 우리는 금식하면서 오히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 뜻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금식은 하나님과 흥정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금식했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결과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윗이 아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했지만 결국 아이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따라서 금식기도의 가장 큰 열매는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도록 내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식기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교만이다.
금식은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오히려 영적인 교만에 빠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남들보다 더 오래 금식했다.” “나는 누구보다 많이 기도했다.” “나는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
이런 생각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면 금식의 목적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금식은 나를 높이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낮추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금식하면서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 사랑하게 되고, 더욱 용서하게 되고, 더욱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면 그 금식은 우리 신앙에 유익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금식했는데 마음에는 미움과 교만과 정죄가 가득하다면 우리는 금식의 의미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금식이 아니다.
성경은 금식하면서도 악을 행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강하게 책망합니다. 이사야 58장은 금식하면서도 다투고 싸우며 다른 사람을 압제하는 모습을 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은 단순히 음식을 끊는 행위가 아니라 삶이 변화되는 금식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금식은
* 죄를 회개하고
* 교만을 내려놓고
* 이웃을 사랑하며
*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고
*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을 용서하고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 맡겨진 사명을 더욱 충실하게 감당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금식의 시간 동안 하나님을 찾았는데 금식이 끝난 뒤에도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금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금식기도와 생명의 소중함
금식기도에 있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 자체도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금식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몸을 무리하게 혹사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물까지 끊는 이른바 ‘건식 금식’은 탈수와 신장 문제, 전해질 이상 등의 위험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의학적으로도 장기간의 금식은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한 영역이며,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위험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이나 모세의 특별한 금식을 오늘날 우리가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자신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의 크기로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모한 자기희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장기간 금식 후에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금식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금식이 끝난 후의 회복 과정입니다. 장기간 금식을 한 사람은 단순히 인터넷이나 과거의 경험담에 의존하여 보호식을 결정하기보다 의료진의 평가와 조언을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특히 당뇨병, 신장질환, 심혈관질환 등이 있거나 저체중인 사람, 임신·수유 중인 사람,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사람 등은 금식 전에 반드시 의료진과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
금식기도는 얼마나 오래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금식은 며칠 동안 해야 할까요?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금식 기간을 명령하지 않습니다. 하루 금식도 있었고, 3일 금식도 있었으며, 7일 금식도 있었습니다. 다니엘처럼 일정한 음식을 제한한 경우도 있었고, 예수님과 모세처럼 매우 특별한 40일 금식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40일을 해야 능력 있는 금식이다.” “21일을 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다.” “3일 금식은 믿음이 약한 것이다.” 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금식의 능력은 금식한 날짜의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회개, 믿음, 순종, 사랑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성도가 금식해야 할 때
성도에게 금식기도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회개해야 할 때,
* 국가와 민족의 어려움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긍휼을 구해야 할 때,
* 가정과 교회에 큰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 감당해야 할 사명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할 때.
그러나 금식은 반드시 거창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끼를 절제하며 하나님께 집중할 수도 있고, 일정한 음식을 내려놓을 수도 있으며, 자신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방해가 되는 것을 절제하면서 말씀과 기도에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끊었느냐보다 하나님께 얼마나 가까이 나아갔느냐” 입니다.
금식기도의 목적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금식기도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받아내기 위한 종교적 행위가 아닙니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며,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 내 안에 있는 욕심을 내려놓고,
* 내 안에 있는 교만을 내려놓고,
* 내 안에 있는 미움을 내려놓고,
*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을 내려놓고,
* 십자가의 은혜를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금식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야 할 분은 금식 자체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금식하면서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말씀을 더욱 귀하게 여기게 되고, 죄를 더욱 미워하게 되고, 이웃을 더욱 사랑하게 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더욱 충실하게 감당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금식기도가 맺어야 할 아름다운 열매일 것입니다.
금식은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 던지는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하나님께 다시 맡겨 드리고, 그 생명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고백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금식기도는 생명을 무모하게 걸어야 하는 기도가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는 기도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끝에서 우리의 고백은 하나여야 합니다. “주님, 내가 원하는 것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