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가? 칼빈의 예정론을 넘어 성경이 말하는 참된 구원의 은혜



정말 천국과 지옥이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 있는가?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천국에 가도록 예정되었고,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지옥에 가도록 예정되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과연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저 역시 오랫동안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에 소속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제자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칼빈주의의 예정론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씩 더 깊이 읽어갈수록 한 가지 질문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구원받도록, 어떤 사람은 멸망하도록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하셨다면 성경 곳곳에서 반복되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교리 논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구원의 본질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성경은 분명 하나님의 주권을 말씀합니다. 동시에 인간에게 회개와 믿음을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고 말씀하는 구절이 있는가 하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는 구절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이 질문을 가지고 성경 전체를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1.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성경은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 특정한 교리 체계에 성경을 끼워 맞추기보다, 성경 전체의 증언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기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에서 말하는 “말씀”은 단순히 성경책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의 문맥에서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이신 로고스,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문장이 곧 하나님 자신이다”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말씀이라는 의미와 요한복음 1장의 성육신하신 말씀을 구별해서 이해하는 것이 바른 표현일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의 구절만 떼어내어 해석하기보다 앞뒤 문맥과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읽어야 합니다.

2. 예정론을 둘러싼 중요한 질문

개혁주의 전통에서 예정론은 매우 중요한 교리입니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관하여 어떤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예정되고, 다른 사람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도록 정해졌다고 명시합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이중예정’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교리가 성경의 모든 말씀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예정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믿음
>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의 보편적 초청

이 세 가지를 성경 안에서 어떻게 함께 이해할 것인가가 핵심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3. 성경은 정말 ‘누구든지’라고 말씀하는가?

성경에는 매우 분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며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0장도 매우 분명합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으며,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시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또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의 초청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것인가? 성경의 표현만 놓고 보면 복음의 초청은 특정 인종이나 사회적 신분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 헬라인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사람,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것은 신약 복음의 매우 중요한 선언입니다.

4. 그렇다면 ‘택하심’이라는 말씀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에 관한 말씀도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장 4~6절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 선택의 목적도 중요합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따라서 예정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너는 천국, 너는 지옥”이라는 운명론적 문장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정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며 거룩하게 하신다는 목적이 함께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즉 예정은 단순히 인간의 최종 운명을 결정하는 개념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성경의 내용이 훨씬 넓습니다.

5. 로마서 9장의 토기장이 비유는 무엇을 말하는가?

예정론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본문 가운데 하나가 로마서 9장입니다. 특히 토기장이와 진흙의 비유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씀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로마서 9장을 읽으면서 곧바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천국으로, 어떤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지옥으로 결정하셨다.” 라고 단순화할 수 있을지는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서 9~11장은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약속, 이방인의 구원, 하나님의 긍휼과 주권을 매우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혈통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약속과 긍휼이라는 관점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토기장이 비유를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는 큰 문맥에서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한 비유만으로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출생 전에 각각 확정되어 있다는 결론을 모두 설명하려 한다면 로마서 전체의 흐름을 충분히 살피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6. ‘예정’과 ‘선택’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여기에서 저는 하나의 생각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저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과 선택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
하나님께서는 선인과 악인 모두에게 햇빛과 비를 주십니다. 생명을 주시고, 자연을 보존하시며, 인간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전통적으로 일반은총(common grace)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베푸시는 창조와 섭리의 은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일반은총과 구원의 은혜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일반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만, 성경은 구원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연결하여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구원의 은혜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람을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사건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모세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는 특별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바울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주님을 만나고 사도로 부름받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인간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을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선택하시고 사용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7.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는 말씀은?

사도행전 13장 48절도 예정론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이 말씀은 분명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이 한 구절만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가 믿을 사람이고 누가 믿지 않을 사람인지 모두 정해져 있다.” 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성경은 동시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믿으라고 명령합니다. 로마서 10장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선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응답이라는 두 측면을 모두 성경의 증언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느 한쪽의 말씀을 없애버리는 방식으로 다른 한쪽을 설명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8.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은혜로 주어진다

우리가 믿는다고 해서 그것을 인간의 공로로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구원의 중심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자신의 의로운 행위나 혈통이나 신분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나의 선택이니까 내가 구원을 이루었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더 성경적일 것입니다. “나는 믿었지만, 그 믿음조차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것이 구원 앞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겸손이라고 생각합니다.

9. 결국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말씀도 만나게 됩니다. 동시에 인간에게 회개하고 믿으라고 요구하는 말씀도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하나를 버려야 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책임 사이의 신비를 인정하면서 성경에 기록된 두 가지 말씀을 모두 붙드는 것이 겸손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고 해서 복음의 보편적 초청을 약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인간의 믿음과 책임을 강조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인간의 선택보다 아래에 두어서도 안 됩니다. 성경은 이 둘을 모두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0. 예정의 비밀보다 더 분명한 것은 복음이다

오랫동안 예정론을 생각하면서 저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모두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셨는지 인간의 이성만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오늘도 모든 사람에게 선포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 차별이 없으며,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누가 천국에 갈 것인가를 인간이 미리 판정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아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며, 나 자신도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믿음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예정의 깊은 비밀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복음의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 앞에서는 겸손해지고,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복음 앞에서는 담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의 이해보다 크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생각보다 깊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예정’을 인간의 운명을 미리 결정해 놓은 차가운 운명론으로 이해하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은혜의 신비를 바라보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 앞에서 오늘도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자랑하기보다 저를 불러 주신 은혜에 감사하게 하시고,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것이 예정론을 둘러싼 논쟁보다 우리가 먼저 붙들어야 할 복음의 본질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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