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에 담긴 사랑의 비밀,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지옥으로 가는 길도, 천국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결국 우리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자유’에는 상상보다 훨씬 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1. 자유라는 이름의 선물과 경계선

오늘 이 글을 읽다가 중간에 창을 닫을 수도 있고,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고 시원한 물을 마실 수도 있습니다. TV 리모컨을 눌러 채널을 돌리는 것 역시 여러분의 온전한 의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며 가장 위대하고도 위험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바로 ‘자유의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장 16~17절)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을 억압하려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자유는 창조주가 정해 주신 ‘사랑과 순종의 테두리 안’에서 비로소 참된 안전과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성한 경계선이었습니다.

2. 인간의 고집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중

성경을 깊이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거절하거나 고집을 피울 때조차 그 자유의지를 강제로 꺾으시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출애굽기 4장에서 모세를 부르실 때를 떠올려 보세요. 모세는 자신의 부족함을 핑계 대며 끝까지 이집트로 가기를 주저했습니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하나님께서는 거듭되는 모세의 거절에 노를 발하셨지만, 그의 의지를 무시하고 강제로 끌고 가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말 잘하는 그의 형 아론을 동역자로 붙여주시는 인내를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왕이나 헤스본 왕 시혼의 마음이 강팍해졌을 때도, 하나님은 그들의 악한 본성과 선택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심으로써 그들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조종하는 리모컨을 쥐려 하지 않으십니다.

3. 선악과의 비극: 자유의 남용과 관계의 단절

그그렇다면 아담과 하와는 왜 선악과를 따먹었을까요? 마귀가 입에 강제로 쑤셔 넣은 것이 아닙니다. 사탄의 유혹에 속은 것도 있었지만, 그 바탕에는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고 싶다”는 탐욕이 있었습니다.

만약 하와가 사탄의 유혹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랑의 하나님은 분명 그 유혹을 이길 지혜와 힘을 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사탄의 거짓말을 선택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직후, 그들의 육체가 즉시 흙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그들의 ‘영’이 죽었습니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전원 플러그가 뽑힌 기계처럼, 인간은 스스로 원죄의 굴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순간에도 천사를 보내 아담의 손을 강제로 막을 수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보고만 계셨습니다. 왜일까요? 억지로 조종당하는 로봇의 순종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4. 로봇이 아닌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길

빌 하이벨스 목사님의 책 『인생의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다』에는 신학생 시절의 인상 깊은 일화가 등장합니다. 한 학생이 분통을 터뜨리며 물었습니다. 교수님! 하나님은 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악행을 당장 강제로 막지 않으시는지요?

교수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언제든 막으실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나를 주먹으로 치려 할 때 하나님이 팔을 강제로 굳게 만드신다면 악은 사라지겠지요. 하지만 그 순간 인간의 자유도, 인류의 역사도 끝납니다.

악을 행하려 할 때마다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면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로봇이 될 뿐입니다. 자아도, 생각도, 행동할 능력도 사라집니다. 용기, 정직, 성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조차 가치를 잃게 됩니다. 선택이 불가능한 상태에서의 사랑은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길만 존재합니다.
고통도 없고 악도 없지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로 살 것인가, 아니면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받을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로 살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셨기에, 우리는 오늘도 복음을 거절할 수도 있고 무릎 꿇어 예수를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기다리시는 것은 강요된 복종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 사랑 안에서 온전히 하나가 되는 참된 순종입니다. 오늘 당신의 자유의지는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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