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정말 구원받았습니까? 믿음의 본질을 묻다.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이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선뜻 대답할 것입니다. “예,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묻고 싶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헌금하고, 봉사하면 우리는 구원받은 것일까요?
물론 교회에 출석하고 헌금하며 봉사하는 것은 귀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성경은 “사람이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결코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모습과 삶의 모습이 같습니까?
우리는 교회에서는 누구보다 열심일 수 있습니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헌금도 하고, 여러 교회 행사에 참여하며, 봉사도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집으로 돌아가면 어떻습니까?
믿지 않는 가족에게는 차갑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는 무관심하며, 가까운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에서는 “주님, 주님”을 외치면서 정작 우리의 삶에서는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해야 할 하나님의 계명을 사람의 전통으로 무효화하는 문제를 지적하시면서 ‘고르반’ 잘못을 책망하셨습니다. 마가복음 7장 11~13절에서 예수님은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핑계하면서 부모를 돌보지 않는 행위를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분으로 정작 사랑해야 할 가족과 이웃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의 말씀처럼,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만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참된 믿음에는 열매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16)
예수님께서는 이 고백을 인간의 지혜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지적인 동의에 머물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그분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삶으로 나타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의 열매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
참된 믿음이 자라면 우리의 삶에도 변화가 나타나야 합니다.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고, 분노가 온유로 바뀌며, 이기심이 섬김으로 바뀌고,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을 품게 됩니다.
물론 그 변화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느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입니다.
넘어졌을 때 다시 주님께 돌아오고,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쓰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26)
행함이 믿음을 대신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믿음이라면 그 믿음에 합당한 열매가 삶 가운데 나타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을 지킨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성경에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견딘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침공하고 왕족과 귀족 가운데 뛰어난 젊은이들을 포로로 데려갔습니다.
그 가운데 다니엘과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있었습니다. 이들의 바벨론식 이름이 우리가 잘 아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벨론의 문화와 압력 속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결국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요.”(다니엘 6:22)
또한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국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다니엘 3장 27절은 그들의 상태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믿음을 지킨다고 해서 언제나 고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가운데 있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바울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는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자신이 당한 고난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세 번 태장을 맞았으며, 한 번 돌에 맞고, 세 번 파선하였으며, 수많은 여행길에서 위험을 당했습니다.
굶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는 고난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 고백은 놀랍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디모데후서 4:7)
바울은 자신의 삶을 ‘선한 싸움’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아무런 싸움도 없는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때로는 유혹과 싸워야 하고, 때로는 세상의 가치관과 싸워야 하며, 때로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싸움의 끝에서 바울은 “믿음을 지켰다”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행한 일이 많다고 반드시 참된 믿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매우 두려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더 놀라운 것은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태복음 7:23)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를 아시는가? 그리고 나는 정말 주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있는가? 이것이 더 중요한 질문입니다.
은사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향한 마음입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은사가 있습니다. 가르치는 은사, 섬기는 은사, 전도하는 은사, 병을 고치는 은사 등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시는 다양한 은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은사가 크다고 해서 반드시 믿음이 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은사가 클수록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성경은 은사를 자랑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은사는 결국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아무리 큰 은사를 가지고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은사의 크기가 아니라 사랑의 크기입니다.
한 번 믿었다고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성령을 체험했어.”
“나는 교회에서 오래 봉사했어.”
“나는 헌금도 많이 했어.”
“나는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고 있어.”
이러한 경험들이 우리의 신앙을 자랑하게 만드는 순간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깨어 있으라고 권면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
신앙은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주님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환경에 머물고 있는가?
내가 가까이하는 사람들은 나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나는 죄를 죄라고 인정하고 있는가?
죄를 짓고도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말씀을 알고 있지만 순종하지 않고 있지는 않은가?
환경은 우리의 믿음에 영향을 줍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방심하면 넘어질 수 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작은 타협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우리의 마음 전체가 세상의 가치관에 젖어들 수 있습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 근주자적(近朱者赤)”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먹을 가까이하면 검게 되고, 붉은 인주를 가까이하면 붉게 물든다는 뜻입니다. 성경도 죄의 환경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시편 1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어떤 환경에 머물고 있는지도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죄를 반복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나쁜 환경 속에 있으면서도 “나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고 자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도 방심하면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6장의 경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히브리서 6장 4~6절은 매우 엄중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 말씀은 구원의 문제를 매우 신중하게 다루도록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성경 전체는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 회개와 용서의 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고의적인 배교와 타락을 반복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태도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구원을 판단하는 일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태복음 24:13) 또한 마가복음에서도 같은 취지로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마가복음 13:13)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끝까지 견딘다는 것이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구원을 이루어낸다는 뜻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구원받았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 다른 사람이 대신 대답해 줄 수는 없습니다. 목사도 대신 대답해 줄 수 없고, 부모도 대신 대답해 줄 수 없으며, 교회 직분이나 헌금 액수도 대신 대답해 줄 수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있는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 삶은 여전히 죄를 사랑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에서는 거룩한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가정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죄를 지었을 때 변명하는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가?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에도 주님을 붙들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삶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구원은 우리가 열심히 교회생활을 해서 얻어내는 상급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의 삶에는 반드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때로 넘어집니다. 때로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죄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잘못했을 때 회개합니다. 상처를 주었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미워하던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나만을 위해 살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교회 안에서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봅시다.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의 믿음을 평가하기보다 먼저 **나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교회 안에서만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가정에서도 그리스도인입니까?
나는 예배할 때만 주님을 찾습니까?
아니면 삶의 모든 순간에 주님을 의지합니까?
나는 교회에서 인정받는 것에는 관심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에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나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신앙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참된 믿음은 말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나타나고, 순종으로 나타나며, 용서로 나타나고,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어려움과 핍박이 찾아왔을 때에도 주님을 떠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구원을 자랑할 사람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제가 교회에 다니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게 하소서. 제 입술의 믿음과 삶의 모습이 다르지 않게 하소서. 가족에게 사랑을 베풀게 하시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교회에서 받은 직분과 은사를 자랑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하소서. 죄를 지었을 때 변명하지 않고 회개하게 하시며,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게 하소서.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믿음을 지키게 하소서.”
구원은 참된 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의 삶에는 반드시 믿음의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오늘 이 질문 앞에 다시 서 봅시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어봅시다.
“내 삶을 통해 예수님이 보이고 있는가?”
이 질문에 우리의 삶으로 대답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참된 믿음과 구원은 삶으로 증명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