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는 군림이 아니라 섬김에서 시작됩니다
목회자의 권위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목사라는 직분에서 오는 것인가.
교회의 제도와 조직에서 오는 것인가.
성도들의 순종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목회자의 삶과 말씀, 사랑과 섬김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참된 목회자의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지만,
그 권위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결국 목회자의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권위의 근원은 하나님이다
권위의 궁극적인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시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사도행전 17:24)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권위 역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질서와 목적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교회의 한 부분을 맡아 섬기도록 부름받은 사람이다. 그에게는 분명 하나님께서 맡기신 권한과 책임이 있다.
성도 역시 목회자의 직분을 존중하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목회자의 영적 지도에 협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권위는 사람을 바른 길로 이끌 수 있지만, 권위주의는 사람을 자신의 뜻에 복종시키려 한다.
참된 권위 앞에서는 존경과 자발적인 순종이 생겨난다. 반면 권위주의 앞에서는 두려움과 억지 순종이 생기기 쉽다.
따라서 목회자가 경계해야 할 것은 권위를 갖는 것 자체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권위를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목회자의 권위는 직함보다 삶에서 세워진다.
목사라는 직분은 결코 세상의 권력자가 되는 자리가 아니다.
성경에서 목회자는 ‘목자’의 이미지로 설명된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한복음 10:11)
목자는 양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다.
양을 살피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길을 잃으면 찾아 나서며, 때로는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목회자의 권위는 어디에서 나타나야 하는가.
강단의 높이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가운의 색깔이나 직함에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교회 안에서 행사할 수 있는 결정권의 크기에서도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말씀 앞에 먼저 자신이 순종하는 모습에서 나타나야 한다.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사랑을 말하면서 자신은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 말은 힘을 잃는다.
섬김을 말하면서 자신은 섬김받기를 원한다면 그 설교 역시 오래가지 못한다.
청렴을 말하면서 물질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성도들은 결국 목회자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삶을 통해 그 사실을 보게 된다.
그래서 목회자의 가장 강력한 설교는 강단에서 선포하는 말이 아니라 강단 밖에서 살아내는 삶일 수 있다.
목회자의 권위는 직분으로 시작될 수 있지만, 진정한 권위는 삶으로 완성된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먼저 말씀 앞에 바로 서야 한다.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사명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목회자는 끊임없이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며 기도해야 한다.
말씀을 전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주장해서는 안 된다.
특히 강단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나 개인적인 감정을 풀어놓는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강요하기보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도와야 한다.
목회자의 설교는 성도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설교를 준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말씀 앞에서 무너지고, 회개하고, 새로워져야 한다.
성도에게 변화된 삶을 요구하기 전에 목회자 자신이 말씀 앞에서 변화되어야 한다.
그때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는 단순한 지식 이상의 힘이 생긴다.
목회자의 권위는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예수님께서 가장 큰 계명으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누가복음 10:27)
목회자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게 된다.
목회 현장에는 다양한 성도들이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도 있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다.
젊은 사람도 있고 노년의 성도도 있다.
건강한 사람도 있고 병든 사람도 있다.
믿음이 강한 사람도 있지만 아직 신앙이 어린 사람도 있다.
목회자는 그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소중한 영혼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교회에서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상처받은 사람, 외로운 사람에게 교회가 마지막으로 기대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목회자가 한 사람의 아픔을 진심으로 품어줄 때 그 성도는 목회자의 설교보다 먼저 목회자의 사랑을 기억할 것이다.
故 손양원 목사의 삶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도 결국 말보다 삶으로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목회자의 권위는 사람을 많이 거느리는 데 있지 않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데 있다.
권위주의의 유혹을 넘어야 한다.
목회자에게는 매우 특별한 유혹이 있다.
바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권위’와 ‘자신의 권위’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내가 목사이기 때문에 내 말을 따라야 한다.”
“내가 교회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나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생각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목회자의 권위는 어느 순간 권위주의로 변할 수 있다.
교회의 모든 결정이 목회자 개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고, 성도들의 의견을 듣지 않으며, 질
문이나 비판을 불신앙으로 간주한다면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기 어렵다.
교회는 목회자의 개인 소유가 아니다.
교회의 주인은 목회자도, 장로도, 특정한 가정도 아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교회를 자신의 왕국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특히 재정 문제, 인사 문제, 후임자 문제, 교회 운영과 관련된 중요한 사안에서는 더욱 투명하고 정직해야 한다.
목회자가 물질과 명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설교를 해도 그 권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성경은 분명히 경고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디모데전서 6:10)
목회자는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도를 섬기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한복음 13:14)
이 장면은 목회자의 권위가 무엇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가장 높은 분이셨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그렇다면 목회자의 권위도 마찬가지여야 하지 않을까.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
명령하기보다 먼저 듣는 것.
대접받기보다 먼저 대접하는 것.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성도의 아픔을 살피는 것.
이것이 목회자가 보여주어야 할 권위의 모습일 것이다.
목회자는 성도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도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다.
교회의 크기가 커질수록 목회자의 겸손은 더욱 중요하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한 사람의 눈물을 놓치지 않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자신에게 더 엄격해야 한다.
성경은 지도자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말씀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야고보서 3:1)
목회자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지적하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성도에게 정직을 요구하면서 자신이 정직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성도에게 절제를 요구하면서 자신은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성도에게 용서를 말하면서 자신은 작은 상처도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목회자에게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 주님의 영광을 위해 목회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 자신의 영광을 위해 목회하고 있는가?”
“나는 성도를 주님의 양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따르는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보다 내 뜻을 앞세우고 있지는 않은가?”
목회자는 이 질문을 평생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
참된 권위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다.
결국 목회자의 참된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직분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직분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참된 권위는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성도를 사랑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물질과 명예의 유혹을 이겨내며, 자신의 삶으로 복음을 증거할 때 자연스럽게 세워진다.
성도 역시 목회자를 존중하고 기도하며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목회자에게 순종한다는 것은 목회자의 모든 말과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의 말씀 안에서 목회자를 존중하고,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걸어가는 것이 건강한 순종일 것이다.
목회자와 성도는 서로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성도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린도전서 11:1)
이 말씀은 목회자에게 참으로 무거운 말씀이다.
과연 오늘의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으십시오.”
목회자의 가장 큰 권위는 화려한 교회 건물에도, 높은 강단에도, 좋은 가운에도, 많은 성도들에게도 있지 않다.
그 권위는 오직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에서 나온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들을 사랑하고,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낮추며, 묵묵히 섬기고, 자신의 유익보다 복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목회자에게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그때 목회자의 말에는 힘이 생긴다.
명령하지 않아도 따르게 되고, 강요하지 않아도 존경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억지로 만들어낸 권위가 아닌 삶으로 세워지는 권위일 것이다.
목회자의 권위는 성도에게 요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고 성도를 사랑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목회자는 날마다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목사로서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그리스도를 닮아 얼마나 낮은 자리에서 성도를 섬기고 있는가?”
그리고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린도전서 9:27)
목회자의 가장 큰 사명은 맡겨진 영혼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