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누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 하는 질문에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분을 간절히 찾는 자(기도하는 자)가 만날 수 있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태복음 7:7]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자기 죄를 뉘우치고 개과천선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먼저 당신의 존재를 믿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눈물로 회개할 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신의 존재를 알게 해주신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말씀을 믿는 자이다.

그런데 회개는 왜 어려운 것인가
그것은 자기가 저지른 죄로 인한 부끄럼 때문이다. 또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과 새로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인간은 죄인의 모습으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먼저 회개하여 의롭다함을 입어야 다시 말해 죄 사함을 받아야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8]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남의 말을 귀 귀울려 듣고 긍정적적으로 생각하는 자다.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7]

따라서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다시 말해 복음을 들었을 때 “나는 아직 그분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진짜 존재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긍정적적으로 생각하며 말씀을 믿는 자다. 저는 아직 하나님을 모르니 깨닫게 해주십시오. 하며 그분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간구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하나님은 무슨 하나님이 있어 난 오직 나만 믿을 뿐이야”하며 하나님을 무시하는 교만한자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하나님은 교만한자에게는 대적하시고, 겸손한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야고보서 4:6]

그러면 어떤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며 교만한 사람은 누구인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며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가 교만한 자다. 겸손의 표본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본체 하나님이셨으나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섬김의 도와 겸손의 모본을 보여 주셨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 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6-8]

불란서 포앙가리 대통령의 겸손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유명한 쏠비대학의 라비스 박사가 있었는데 그 대학 강단에서 박사 교역 50주년 기념식이 열렸을 때 많은 손님이 입추의 여지가 없이 모여 기념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던 것이다. 이때 라비스 박사는 답사를 하려고 강단에 올라보니 맨 말석 학생들이 앉은자리에 포앙가리 대통령이 학생들과 함께 앉은 것을 보고 너무 황송하여 단상으로 모시려고 하였다.

그러나 대통령은 끝까지 거절하며 말씀하시기를 나는 배운 제자로서 이 영광스런 자리에 대통령 자격으로 온 것이 아니라, 제자로서 축하하러 왔다고 하였다. 그때에 라비스 박사는 다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이렇게 겸손하신 대통령을 모시었으니 앞으로 우리나라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2:3-4]

그러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인가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가족이 납치되었든가 혹은 어린 자녀를 잃어버렸다든가 또는 총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기타 생명의 위협이 느껴질 때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 부처님 하며 신을 찾게 된다.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는 타동물에게는 없는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세기 2:7]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는 고난이 왔을 때, 죽도록 고독할 때, 세상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질병에 걸렸을 때, 내 능력으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때가 바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든 일이 어려움 없이 잘 될 때에는 하나님 없이 자기 능력으로 이룬 줄 생각하고, 육신의 즐거움과 쾌락과 교만에 빠져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감겨 있기 때문이다.

토 마스 머튼( Thomas Merton)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을 너무 쉽게 발견했다면 아마도 당신이 찾던 하나님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분을 알고 사랑하도록 창조하셨지만, 정작 당신 자신은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으신다.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쉽게 만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왜 자신을 좀 더 명백하게 드러내지 않는가
그분은 공의로우신 분으로써 천지를 창조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공의로우시며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강권적으로 우리를 복종하게 만드시지 않으셨다. 그분은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예수를 통해서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회의론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자연을 보고 더듬어 그분을 찾아 발견하게 하시려는 깊은 의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솔직히 말해서 우리 인간은 무언가를 믿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것은 목마름이며 배고픔 같은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믿지 않으면 불안해서 수많은 우상을 섬기며 방황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상대로 만들어낸 우상을 믿음의 대상으로 여긴다.

일본사람들은 집집마다 가신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인간은 무엇인가 섬기지 않으면 불안해서 마음의 평안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11]

Screenshot_2

하나님과의 만남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에, 상상해본적도 없는 방법으로 임하신다. 모세가 불에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고 이상히 여겨 바라보다가 갑자기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출애굽기 3:2]

교회를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났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크리스천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있다고 간증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만나보십시오. 그분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 분이시지만 누구나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 감격과 감동, 기쁨과 감사와 활홀함을 경험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을 만나기 위에 문 밖에 서서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